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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9일 큐티 묵상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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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9일 큐티 묵상

Brave Chan 2016. 9. 19. 20:57

오늘 아침, 하나님이 어떤 말씀을 하실지 기대했었는데 왠걸, 여친과 헤어지고 난 그다음주에 받은 말씀을 또 주셨습니다.  아, 좀더 멍에를 지라는 뜻이신건가 싶기도 하구요. 

'멍에'란 무얼 뜻하는지 퇴근후에 좀 더 묵상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9/19 (월)

아침큐티: 사람은 젊었을 때에 멍에를 메는 것이 좋으니

혼자 앉아서 잠잠할 것은 주께서 그것을 그에게 메우셨음이라 애3;27~28



저녁큐티: 마11:28-30. 막6:30-33   내게 와서 쉬어라



왜 우리가 7일 중 하루는 쉬어야 하는지 본문에서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쉬는 것은 우리 하나님의 명령이십니다. 하나님께서도 창조사역이 다 끝난 일곱째 날에는 쉬셨습니다. 그러나, 바쁘게 지내지 않으면 할일 없어보이고 게으르다고 여기는 현대사회에서 기독교인으로서, 쉼에 대해 어떠한 태도를 가져야 할까요?


(본문) 

우리가 참된 휴식과 평안을 누리기 위해서는 세 가지 조건을 만족해야 합니다 
"오라". 이것이 첫째 조건입니다. 
"멍에를 매라". 이것이 둘째 조건입니다. 
셋째 조건은 "내게 배우라." 이것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갖고있는 무거운 짐을 진 채로 그대로 "오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저마다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는 각자의 짐과 삶의 무게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것을 그대로 다 가지고 나오라는 겁니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실 당시에, 이 말씀을 듣고 있던 정통 유대인들에게는 사실 신앙이라는 게 무거운 짐같았습니다. 예수님이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게 뭐라고 야단치셨냐하면, 마태복음 23:4에 보면 "또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않으며" 그러셨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종교란 건 하나도 남김없이 준행해야 되는 끝없는 규례와 규칙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행위를 규정해 주는 규례와 규칙의 밀림 속에서 살아야만 됐습니다. 그들은 항상 "-하지 말찌니라"라는 소리를 들으면서 살아야 했습니다. 
어떤 유대인 랍비가 고백을 한 문서가 있습니다. 
"우리 이웃에는 딸들과 약간의 밭을 가진 가난한 과부가 한 사람 있었다. 그 과부가 밭을 갈기 시작했을 때 모세는 말하기를 '너는 소와 나귀를 겨리하여 갈지말며(신22:10)'라고 말하며, 파종할 때는 '네 밭에 두 종자를 섞어 뿌리지 말며'(레19:19)라고 하며, 추수하여 가리를 쌓을 때는 '떨어진 이삭이나 잊어 버리고 둔 못을 다시 가서 취하지 말며(신24:19)'' 혹은 '모퉁이까지는 다 베지 말며(레19:19)'라고 말했다. 또 타작을 시작할 때는 말하기를 '번제와 처음의 십분의 일, 또 다음의 십분의 일을 드려야 한다'고 말했다. 그 과부는 율법의 명령을 순종하였으므로 모든 것을 모세에게 드렸다. 그 가난한 여자는 어떻게 되었을까? 결국 밭을 팔아야만 했다. 그리고 그 밭을 판 돈으로 양을 샀다. 그러나 결국 그것도 제사장인 아론이 요구한 율법 때문에 다 헌물로 바치고 말았다" 

이 얘기가 무슨 뜻입니까? 
율법이 요구하는 바가 얼마나 억압적이고 부담스럽고 불가능한 것인가를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사람은 도저히 율법대로 살 수가 없습니다. 
그런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은 그 무거운 짐을 다 그대로 지고 오라는 것입니다. 그 속뜻이 뭘까요? 
나만 믿으라는 겁니다. 그 무거운 율법을 다 지킬 필요없고 나만 믿으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를 믿기만 하면 그 불가능한 율법을 지키느냐 지키지 못하느냐 하는 것과는 상관없이 쉬게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 굴레에서 벗어나게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도 신앙을 갖는다는 것이, 교회생활 한다는 것이 삶을 구속하고 억압하는 짐으로 생각하시는 분이 계십니까?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만약 그런 생각이 있더라도 예수님께 나와서 풀어놓으라는 겁니다. 그러면 쉼을 주시겠다는 겁니다. 
와서 짐만 풀어놓으라 그것입니다. 그게 어떤 짐이든 상관없이 내려 놓으면 다 맡아서 관리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어려울 게 아무 것도 없습니다. 


"내가 주는 생명은 너를 괴롭게 하는 무거운 짐이 아니야. 너의 사명과 너의 생활은 너에게 합당한 거야. 너에게 주신 일은 너의 필요와 능력에 꼭 맞는 거야" 그 말씀입니다. 
절대로 나쁜 멍에, 무거운 멍에, 뾰족한 멍에를 씌우시지 않고 꼭 맞는 멍에를 주신다는 겁니다. 그러니 아무 염려말고 내 멍에를 메고 쉬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멍에의 의미를 주님께 대한 "순종"으로 봐야 할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분명히 어떤 일에 대해 순종하실 것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순종할 때, 그 순종은 우리에게 부담스러운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쁨이 되고 쉼이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멍에를 기꺼이 지시기 바랍니다. 


셋째는 "내게 배우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표현하시기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찌보면 이 말씀 자체가 겸손하지 않은 말씀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그분이 누구신가 하는 것을 우리가 안다면 우리는 바로 이 말씀에 동의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본체시지만 하나님과 동등될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오히려 종의 형체로 이 땅에 오셔서 죽기까지 복종하신 분"이 예수님이셨습니다. 천사를 부를 수도 있었고, 태풍이나 지진을 부르실 수도 있었지만 한 마리 어린 양처럼 순하셨던 분이 예수님이셨습니다. 
그 예수님을 생각하고 그분을 닮으려고 한다면 거기에 참된 평안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휴식을 취해야 합니다. 
때로는 한적한 곳으로 혼자 가야할 때가 있습니다. 
그곳에서 우리 주님을 생각하면서 쉬어야 합니다. 
쉬면서 주님의 말씀을 묵상해야 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또 우리에게 짐을 주시고 멍에를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 짐과 멍에는 더 이상 무겁지 않을 것입니다. 쉽고 가벼울 것입니다. 
이런 참된 쉼과 평안이 여러분에게 평생 계속되기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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