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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0일 큐티 묵상

Brave Chan 2016. 9. 20. 20:31

어제 큐티 '9월 19일 큐티 묵상'에 이어서 멍에에 대한 말씀을 오늘 아침에 주셨습니다.  멍에가 뭔지 알고자 하는 궁금증을 하나님이 직접 설명해주신 것 같아요. 

 

9/20 (화)

아침큐티: 자기를 치는 자에게 뺨을 돌려대어 치욕으로 배불릴지어다 이는 주께서 영원하도록 버리지 아니하실 것임이며 그가 비록 근심하게 하시나 그의 풍부한 인자하심에 따라 긍휼히 여기실 것임이라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게 하시며 근심하게 하심은 본심이 아니시로다 예레미야애가 3장 30~33절


다음은, Bible25 앱에 나온 예레미야애가 3장에 대한 해석 부분입니다.  안드로이드, 아이폰으로도 앱 다운이 가능합니다 (무료 앱) 



성경이 쓰인 이때 당시, 많은 젊은 사람들이 포로로 끌려갔다고 합니다.  선지자는 이 포로 생활의 멍에가 그들에게 유익이 될 것이며 또한 이렇게 무거운 멍에를 메게 하신 하나님의 뜻을 찾으려고 애쓰다 보면 이것이 결국 그들에게 유익이 된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서의 멍에는 고통의 멍에를 의미하는 듯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젊었을 때에 이 멍에를 지는 것이 유익하다는 걸 깨달았다고 합니다.  멍에를 짊으로서, 길들여지지 않은 황소와도 같이 교만하고 방종해지기 쉬운 자들을 겸손하게 만들어준다고 성경 풀이에 나와있습니다. 


그러면 젊었을 때 지게 되면 유익이 되는 그 멍에는 언제 메게 되는 걸까요?


1)  그때는 우리가 고통 중에 잠잠히 있을 때입니다.  혼자 앉아서 잠잠할 것은, 그렇게 앉는 이유는 하나님과 대화하고 우리 영혼과 교제를 나누며 모든 불만스럽고 의심스러운 생각을 억제하기 위해서 입니다. 

저와 대화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과의 대화는 곧 기도입니다.  기도를 더 많이 해야할 때입니다.  



2) 그때는 우리가 고통 중에 겸손히 참고 있을 때입니다.  '입을 티끌에 대는' 사람은 그 멍에로 인해 유익을 얻는다고 합니다. 이 말의 의미는 하나님의 뜻에 복종한다는 표시로 손을 입에 댈 뿐만 아니라, '죄를 기억하고 슬퍼한다는 표시로 그 입을 티끌에 댄다'는 것입니다. 죄로 인해 진실로 자신을 낮추는 사람은 비록 입을 티끌에 댔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선한 소망을 품고 기뻐할 것입니다. 

상황에 좌절하거나 분노하지 않고, 겸손하고 겸허한 마음으로 있어야 한다는 말인 것 같습니다. 


3) 그때는 우리에게 고통을 주는 사람들에 대하여 온유해지고 그들을 용서해 주려는 마음을 지니게 될 때입니다. 

사람에게 화내지 않고 짜증 내어 상처를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온유의 마음을 갖는 것이 멍에를 메는 거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일, 즉 '멍에를 메는 것'에 모범을 보이셨습니다.  곧 그는 '때리는 자들에게 등을 맡기신' 것입니다 (사 50:6). 남들의 비난과 멸시를 참을 수 있으며, 욕을 욕으로 고통을 고통으로 갚지 않는 사람들은, 그 멍에를 매는 것이 유익하며 자기에게 영적인 성장을 가져온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짊어주신 멍에,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적당한 멍에를 짊어질 때에 내가 성숙해지고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31-32절에 대한 해석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은혜를 베푸사 그 백성들에게 고난을 주신 때를 따라서 적절한 위로를 주실 겁니다.  우리는 다음 사실로 인해 고난을 견뎌낼 수 있습니다. 

1) 우리가 버림 받을 때에도 아주 끊이지는 않았다는 사실을 아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아들을 바로잡은 것이지, 의절할 것은 아닙니다. 

2) 우리가 한동안 아주 끊어진 것처럼 여겨질지라도 진짜 끊어진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아는 것입니다. 

3) 우리가 어떤 슬픔에 빠져 있더라도 하나님의 손이 그 안에 계심을 아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 슬픔이 잠깐이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1:6) 

4)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슬퍼하도록 만드신 사람들에게도 긍휼과 위로를 많이 주심을 아는 것입니다. 그는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해주실 것입니다 (호 6:1)


33절에 대한 해석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슬프게 하신 것은 거룩하고 지혜로운 뜻을 위함입니다.  그는 우리에게 재앙을 내리시기를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고의적으로 즉 '본심에서' 그러시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1) 하나님은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그렇게 만들지 않으면, 결코 고통을 내리시지 않습니다.  만일 주께서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신다면 그것은 그에게 선한 것이기 때문이며, 만일 우리에게 쓰라림을 주신다면 그것은 우리가 그것을 받을 만하고 또 필요하다고 여기시기 때문입니다. 


2) 하나님은 죄인의 죽음이나 성도들의 불안함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그것은 마지 못해서 믿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하나님은 피조물 중 어떤 것이라도 고난을 당하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이 고통을 당하는 것을 보시고 자신이 고통스러워하시고, 우리들의 고통으로 인하여 하나님 자신의 영혼이 슬퍼하십니다. 


3) 백성들에게 고통을 주실 때조차 하나님은 자비를 지니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인생으로 근심하게 하는 것이 본심이 아니라면' 하물며 자신의 자녀들에게는 어떻겠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이 얼굴을 찌푸리시고 그 손에 매가 들려 있는 것을 볼 때에도, 믿음으로써 하나님의 마음은 사랑으로 가득 차 있음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니, 상황적으로 힘들고 심신이 지쳐도 우리는 기쁨으로 하나님의 긍휼과 도우심을 기대하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난달 여친과 헤어지자마자 받은 성경구절이 또 반복되어서 당황했지만, 지난번과는 다릅니다. 담대함으로, 그리고 좀더 기뻐함으로 상황을 인내하고 하나님께 더 나아가는 하루하루가 되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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